순정

영농일기 2019/05/10 11:13
모종을 심은지 보름이 지났다.
그 동안에 우여곡절이 참 많다.
나의 조급증도 문제지만
모종들이 영 신통치가 않았다.
닷새 엿새 일주일이 되도록
착근들을 못하고 시들시들했다.

여러 사람에게 원인을 물었으나
대답은 한 가지.
심을 때 물을 안 준 것이 화근이란다.
설사 밭에 습기가 넘쳐도
심을 때만은 물을 충분히 줘야 착근이 된다는 것.
육묘 전문가가 주지 말래서 안 준 것인데
내가 생각해도 물을 안 준 것이 잘못이다.

닷새 지나서야 부랴부랴 물을 주었다.
그러나 멀칭을 해놓아 쉽지 않았고
400그루를 하나 하나 살펴 물을 주기도 어려웠다.
결국 대충 물을 주다가
급기야 30여 그루는 뽑아내고 다시 심었다.

보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시들시들한 것이 적지 않다.
어떤 것은 장대하게 크는데
왜 어떤 것은 그다지 작고 여릴까?
한날 한시 한 모판에 심었을 텐데
이처럼 차이 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하긴 사람도 그와 같지 않던가?
붓다는 분별 말라 하시지만
세상엔 엄연히 차별이 있음이 가슴 아프다.

내가 화학농약과 비료를 안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아무리 내가 유기농을 하고싶어도
주변의 도움 없인 안 된단다.
주변에서 약을 치면
그 약들이 날아들어올 뿐더러
벌레들은 약이 없는 내 밭으로 몰려든단다.

나도 안다.
그러나 날아들어오는 농약이
직접 작물에 친 농약 만큼 해롭겠는가?
내 밭으로 몰려오는 벌레들은
내가 더 열심히 막으면 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만류와 염려에도
나는 유기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최대 600포기를 심을 수 있는 밭에
고추도 399포기 밖에 심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것이
내 작물에 대한 나의 순정인지 모르겠다.

적게 심은 만큼
한 포기 한 포기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차별이 나는 것이 세상이니까.
그러나 내 순정을 후회할 만큼
피해가 크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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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법

마음의 편린 2019/04/28 08:54
요즘 거울을 보면
머리숱이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아내에게
"봐봐, 내 머리 많이 늘었지?
이제 대머리 아니지?"
하고 물으면

아내는 피식,
"하나도 안 늘었어.
그대로야"

그런데 왜 내 눈엔
머리가 많이 난 것 처럼 보일까?

예전 머리숱이 그래도 괜찮을 땐
머리 빠지는 것만 보였다.
매일 거울을 보며 머리 속 빈 곳만 찾았다.

머리가 많이 빠진 지금은
머리가 조금이라도 새로 났을까 찾는다.
그러니 머리카락 있는 것만 보인다.

행복과 불행도 그런 것 아닐까?
무엇을 찾는가에 달린 것 아닐까?

내가 찾는 건
행복인가, 불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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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방제

영농일기 2019/04/26 17:21
오늘 1차 방제를 했다.
은행 열매 삶은 물과 자닮오일,
그리고 자닮 유황을 연하게 섞어 만든 1단계 농약이다.

모종 심은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벌써 벌레가 붙은 것이 여러개더라.
약을 뿌리자 한 마리는 바로 죽고
서너 마리는 급히 도망 갔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안 보인다.
어디 숨었나, 어디 가서 죽었나?

어제 심은 고추는 극대과종 '샛별'.
열매가 크고 맵기는 중간 정도란다.
제대로 키우면 손바닥만 하단다.
하지만 유기농으로 키우면
아무래도 조금 작을 것이라고.

그동안 직접 배양한 미생물을 6차례나 줬고
기비도 퇴비와 유기질 비료만 주었다.
앞으로도 화학 비료와 농약을 일체 쓰지 않을 작정이다.
이를 듣고 벌써 여러 사람이
올 가을 내 고추로 김장을 담그겠단다.
정말 그렇게 해주면
고추 팔 걱정은 없겠다.

그러나 만일 내 천연농약이 효과가 없다면
화학농약을 쓸 수밖에 없다.
그 경우에도 되도록 적게 쓰도록 노력할 것이다.

올해는 천연농약을 미리, 제대로 많이 준비했으니
끝까지 유기농으로만 기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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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영농일기 2019/04/25 16:50
드디어 오늘 고추 모종 399포기를 심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 혼자 하면 6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내와 누이동생이 도와 3시간도 안돼 끝났다.

오래 벼르던 일을 해치워 마음이 홀가분하다.
하지만 한 구석엔 찜찜한 부분이 있다.
오늘 심은 게 제대로 심은 것일까?

본래는 땅을 파서 모종을 심고 흙으로 덮은 뒤
물을 준 다음 꺼진 부분을 다시 흙으로 채워줄 계획이었다.
그래야 뿌리가 쉽게 정착하는 것으로 배웠다.
주는 물도 그냥 물이 아니라 미생물 배양액을,
심을 때도 뿌리를 잘라 펴서 심을 계획이었다.
모두가 뿌리 활착을 촉진키 위한 것이다.
이러러면 아무래도 혼자로선 힘들 것 같아
은근히 아내가 와주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육묘상이 와서 보더니
흙이 습기가 많다며 오늘 물을 주지 말란다.
또 멀칭 매트가 너무 질겨 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모종판에서 뽑아 그대로 심고 물도 주지 못했다.
그동안 수십번이나 머리 속으로 연습한 나의 모종심기는
허망하게 무용지물이 됐다.
일은 빨리 끝나 좋았지만
뭔가 아쉽고 찜찜하다.
제대로 한 것인지 자신이 없다.

내가 하도 걱정을 하니까
누이 동생이 하는 말,
"오빠, 식물들은 생명력이 질겨.
마른 땅에도 꽂아만 놓으면 대부분 살아."

그럴까?
정말 그럴까?
그래야지.
그렇다니 믿을 수 밖에.

오늘 심은 고추 399포기는
직업적 농사로는 아주 적은 양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작년의 농사 실험에 이은
본격 농사 도전이다.
오늘의 결과가
앞으로의 내 길을 결정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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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한담 2019/04/21 08:42
큰 처남 딸의 혼사가 있어 서울에 갔다 왔다.
내가 서울에 간다니 친구들이 때맞춰 자리를 마련해
모처럼 젊은 시절로 돌아가 웃고 떠들며 술을 마셨다.
그런데 어쩌다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정치 얘기 안 한지 오래 됐는데...

정치적 논쟁엔 항상 답이 없었다.
모두가 자신이 듣고싶은 것만 듣고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며
자기 하고싶은 말만 할뿐이었다.

인간은 본래 그렇다는 것을,
정치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서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모든 동전엔 양면이 있음을 단순한 이해를 넘어 체득하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나의 의지가 터무니 없음을 깨닫고는
정치에 대한 언급을 되도록 피했다.

그런데 시골에 오니,
그리고 나이가 들다보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가 노인이더라.
그래서 그런지 하는 이야기들이 온통 보수 꼴통이다.
게다가 들어보면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엮은 가짜뉴스다.
이들은 다른 쪽 이야기는 들어볼 생각도 없이
자기들끼리 정보를 나누며 비분강개, 적개심을 키워간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을 뿐이다.

서울친구들은 나름 배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비교적 객관적이다.
의견이 달라도 끝까지 자기 주장을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싸워봤자 결판이 안 난다는 것을 아니
알았어, 너는 그렇게 살아, 하고 마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는 정치 애기 자체를 별로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세상,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구차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왜 갑자기 내 생각을 물은 것일까?

아마도 현 정부가 최근 많은 욕을 먹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야당은 정권 규탄 대규모 장외집회까지 열고 있다.
이런 마당에 내가 변함없이 현 정권을 지지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문재인 정권, 나도 걱정이 된다.
처음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북문제가 삐걱대고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장차관에 이어 대법원 인사까지 잡음이 심하자
내심 편치 않았다.

그러나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격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소한 것을 침소봉대하거나 왜곡하여
문정부 헐뜯기에만 급급하다.
정부가 태극기 하나 잘못 매달면
금방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가?
비판 방식도 어찌 그리 천박한가?
이러한 야당을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의 욕을 먹는 건 불가피하다.
아니, 아예 무시하는게 좋다.
그 대신 결과로 심판받으면 된다.

정작 중요한 건 다른데 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이대로 가도 이뤄질까?
현 정부 경제정책은 정말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걸까?
나도 점점 의심스러워진다.
그런데도 말을 하다 보니
현 정부 두둔하기에만 정신이 없었다.
바보 같으니...
후회스럽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을.

그러나 아무 대안도 없이
사사건건 정부 헐뜯기에만 매달리는
야당과 보수언론 편을 들순 없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없이 살려 해도
세상은 피곤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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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일상 속에서 2019/04/10 10:51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무 서둘렀나?
고추 심을 준비를 마친지 벌써 여러 날이다.
막상 밭을 다 만들어놓고 보니
모종 심을 날만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다.

그동안 미생물도 4차례나 주었다.
멀칭을 살짝 들춰보니
이랑에 곰팡이가 하얗게 슬었더라.
그만큼 땅이 좋아진 거?
글쎄....
미생물을 제대로 배양하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참, 올해 농사 작물은 고추로 결정했다.
깻잎은 결국 안 하기로 했다.
남자가 짓는 농사론 부적절하고
경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창 값이 비쌀 요즘 한 박스에 1만원도 안 된다니
안 하기 잘 한 것 같다.

이곳에 내려올 때
깻잎은 무조건 한 번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고추를 심기로 했었다.
또 장기적으론 대추가 어떨까 생각했다.
앞으로 10년은 더 일하기로 했지만
갈수록 힘이 달릴 테니 대추농사가 대안일듯 싶었다.
올해 고추 농사를 지어보고,
농사 계획을 확정할 생각이다.
천황대추는 시험삼아 5그루를 심었다.

이사 계획도 확정됐다.
아내를 위해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두배 넓은 집을
대출을 받아 샀다.
지금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가능한 한 아내 마음에 들게 하려다 보니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즐거운 일이다.

올해 해결해야 할 일이 8건이나 있었다.
특히 이사를 하려면 6가지가 거의 동시에 풀려야 했다.
그것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런데 이제 거의 모두 해결됐다.
필요한 순간에 신기하게도 문제가 해결된다.
신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 것일까?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이 됐다.
그러나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이들은 모두 20일 이후에 몰려있다.
일도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리는 것도 또한 일이다.
그리고 모든 기다림은
설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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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일을 하루에 하다

영농일기 2019/03/17 18:11
1단계 밭 만들기가 끝났다.
2주 전부터 작목반장을 구슬러
트랙터로 두번째 로타리를 친 뒤
다음 날 영철씨를 다그쳐
바로 고랑도 냈다.

오늘은 이랑과 고랑을 정리하고자 했으나
때마침 내려온 아내와 동생이
자기들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 다 하라
어찌나 성화, 혹은 응원을 하는지
최소 사흘, 세번에 걸쳐 하려던 일을
오늘 다 했다.

먼저 이랑을 다듬고
하우스 주변 수로를 정비했으며
두둑에 점적호스를 깔았다.

수로 정비와 점적호스 설치는
머릿 속으로 수십번 궁리했던 일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모두 해치웠다.

이제 미생물을 길러 주 단위로 주입하면서
잡초매트로 멀칭을 하고
고추 심을 준비만 하면 된다.

일을 마치니 너무 기분이 좋다.
그동안 속으로 무척 쫓겼는데
이제야 마음이 좀 느긋해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급하게 했으니
다시 손 봐야 할 것도 많겠지.
그러나 그건 그때 가서 하면 그만이다.

이런 날,
아들이 보내준 술
어이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분 좋게 또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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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담 2019/03/15 20:19
아들이 막걸리를 한 박스 보내왔다.
전통술 명인이 빚었다는 생막걸리.

한잔 따라 마셔보니
에게게..! 이게 웬 명품?
싱겁고 떨떠름하기만 하다.

달달한 장수 막걸리에 길들여져서인가?
영 맛이 아니다.
아들이 보내줘 기대가 컸는데
살짝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혹시 덜 익었나?

그러나 자꾸 마시다 보니
이건 또 뭰 일?
담백하고, 순수하고....
맛이 기막히다.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고
먹을수록 되레 당기는 이 맛.
뒤끝도 깨끗하다.

그러나 술맛보다 더 흡족한 건
아비를 생각해준 아들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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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영농일기 2019/03/13 21:20
오늘 두번째 막일을 했다.
시골에 내려와 막일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그것은 일종의 품앗이, 혹은 봉사였고
이렇게 돈을 받기로 하고 일을 한 것은
이틀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귀농을 한 사람들은
은퇴자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막일을 한다.
농사로는 당장 생계가 안되니
품삯으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귀농을 해놓고
농사보다 막일에 더 빠져든 사람도 있다.
차라리 돈 벌기가 더 쉽고 마음도 편하다는 것이다.

나는 생계와는 무관하지만
막일을 하려고 나름 신경을 써왔다.
앞으로 몸으로 살겠다 작정했으니
막일도 당연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또 막일을 해야 이곳 사람들과 친해질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일을 주지 않더라.
남들보다 덜 줘도, 아니 반만 줘도 좋다고 했지만
나에게 일을 해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젊은 귀농인들은 자기들끼리 팀을 이뤄 자주 일을 나갔지만
나는 끼워주지 않았다.
막일을 할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함께 해봐야 도움은 커녕 되레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이를 용세 성님께 자주 불평했더니
엊그제 자기 농장에 와서 일을 해보겠느냐 물었다.
불감청 고소원.
품삯은 반만 줘도, 돈 값을 못한 것 같으면 아예 안 줘도 된다며
혼자 신이 나서 휘파람 불며 일을 나갔다.

그런데 참 힘 들더라.
미리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육체노동이라는 것이 운동하고는 역시 다르더라.
무엇보다, 돈을 받고 일한다고 생각하자
꾀를 피우면 안된다 싶고
그래서 공연히 힘이 더 들었다.
허물없이 지내던 용세 성님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렇구나.
개도 밥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알고 비위를 맞추려 애쓴다더니
돈받고 일하려니
돈 주는 사람 눈치가 보이는구나.

내 평생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제법 용감한 척, 누구 앞에서도 할 말 못 한 적 없다.
하지만 내심으론 늘상 신경이 쓰이더라.
사장에게 찍혀 짤리면 어쩌나 불안하고
불안해 하는 그런 내가 또 역겨워 죽겠더라.

사실 모든 고용관계는 평등한 것이다.
고용자도, 피고용자도 다 필요해서 하는 일이고
그러니 서로 필요한 부분을 주고 받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고용자가 부당한 충성을 요구하거나
피고용자가 과도한 기대를 가지면
둘 사이의 균형이 깨진다.
개와 주인의 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순탄치 못한 직장생활을 한 것은
고용인의 충성 요구는 거절하면서
고용인에 대한 기대는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그 기대를 미련없이 접었더라면
역시 출세는 못 했겠지만
훨씬 당당하고 행복했을 것이다.

첫날 일을 하고 오니
온 몸이 온통 뻐근하고 아팠다.
잠자리에 누워서는 몸을 뒤척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평소 운동을 해온 덕분인지
다음날 아침엔 거뜬했다.

오늘은 첫날보단 훨씬 수월했다.
눈치도 훨씬 덜 보인다.
그러나 역시 자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쩌다 한번은 몰라도
밥 먹자고 할 짓은 못 되는구나.

아무리 막일이 귀농생활에 도움이 돼도
몸과 마음이 불편하면 하지 않겠다.
이 나이에 그리 무리할 것 있는가?
막일도 일단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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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 알러지

2019/03/09 19:20
입 속의 이상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아린 것도 아니고, 시린 것도 아니고,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는 불편한 증상이
여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깨진 치아에 레진 치료를 받을 무렵부터인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치료가 잘못돼 이나 잇몸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했다.
그렿다면 꽤 시간이 지난 지금쯤은
눈에 보이게 악화돼야 맞지 않는가?
그러나 그다지 증상이 심해진 건 아니다.

그러면 신경이 예민해서 몸의 균형이 깨진 탓인가?
명상 등 나름대로 개선 방법을 찾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가자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무슨 병원으로 가야 하지?
치과? 내과? 신경과?

막상 병원에 가보려 하자
불안이 갑작스레 깊어졌다.
이때 문득 든 생각.
혹시 계피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가만 생각하니
계피를 달여 먹은 것도 두달 가까이 됐다.

나는 본래 소양인 체질이다.
손 발이 뜨거워서 꼭 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잤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손발이 차가와졌고
최근엔 마치 얼음장같이 돼버렸다.
몸이 차가우면 면역력도 떨어진다는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혹시 찬 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 아닐까?
젊은시절부터 건강을 위해
이른바 '육각수'를 마셔왔다.
한때 기적의 물이라며 유행했던 섭씨 4도의 물.
'기상 후 냉수 한잔'을 시작으로
종일 틈틈이 이 물을 마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쾌하던 물맛이 사라졌다.
그게 악영향의 신호였던 건 아닐까?

의심이 들면서 찬물을 멀리했다.
아침엔 이른바 음양탕을 마셨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크게 좋아진 건 아니다.
그러다 계피가 몸을 덥히는데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생강을 곁들이면 효과가 배가되고
꿀을 타면 완전 기적의 약이 된다고.
그래서 계피와 생강을 함께 달이고 꿀을 섞어 마신지
벌써 두달이 가깝다.
그런데 혹시 계피가 내 몸엔 안 맞는 거 아닐까?

'계피의 부작용'이라는 키워드로
부지런히 인터넷을 뒤져보니
맙소사, 있다!
계피엔 쿠마린이라는 성분의 독성이 있어
과용할 경우 입과 입술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다고.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입속이 불편했구나.

그런 걸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고민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내가 가소로와 마구 웃음이 났다.
사실을 알자 불편한 증상도 즉시 사라졌다.
간사한게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사람의 몸 또한 간사하구나.

어쨌든 고민 하나가 해결됐다.
아무리 좋은 계피차라도
앞으론 적당히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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